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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의 미래 : 리뷰 4장 위기 또 위기, 외환위기사

BK MONEY STUDIES 2023. 7. 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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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의 미래  : 리뷰 4장 위기 또 위기, 외환위기사

( 서론 )

1971년 달러의 금태환 중지선언 이후에 달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다. 달러의 금리가 낮을 때 전 세계로 달러가 돌아다니다가 달러의 금리가 높아지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동시에 여기저기 문제가 일어났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 금융위기, 97년대 아시아금융위기등이 그 예들이다. 2022년부터 겪어온 전 세계적인 자금경색도 코로나 19 때 풀린 달러를 연준이 거둬들이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 달러와 세계경제금융의 관계)

브루킹스연구소는 글로벌 달러 사이클이라는 논문에서 달러의 강약과 신흥국의 경기변동이 깊은 연관을 가지고 변화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달러가 많이 돌아다니면 개도국의 경제가 좋아지고 달러가 시중에 없어지면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것이다.

 예 1) 라틴아메리카 금융위기
1982년 멕시코는 800억 달러의 차입금을 못 갚아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미국과 IMF의 도움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환율급등과 마이너스 경제성장률로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
70년대 원유산유국들이 친이스라엘 서방국가들이 맘에 들지 않아 석유생산을 줄였다. 유가는 급등했고 오일쇼크가 일어나는 전초전이 만들어졌다. 석유생산의 감소는 석유를 수입해서 쓰던 중남미 국가의 경상수지를 적자로 만들게 했다. 산유국은 반면에 오일 달러가 풍부하였다. 넘쳐나는 달러로 미국에 장기국채를 매입하였다. 미국은 넘치는 달러를 경상수지적자를 겪는 중남미국가에게 빌려주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등의 중남미국가는 대출을 반겼다. 이후, 미국의 시중금리가 오르고 은행들은 대여금 만기를 단축하고 금리를 인상했다. 미국은행에 빚이 많은 중남미국가들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다른 남미국들도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IMF는 경제 개혁과 재정 적자 문제해결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IMF 체제동안 실업률의 급증과 위축된 경제성장률이 결과로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의 발전모형은 차입을 통해 내수를 확대하고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키운다. 문제가  일어나면 돈을 풀어 해결한다. 이런 경제 발전방법은 모래 위 성 쌓기식이다. 경제발전의 핵심은 국민들 각자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예 2) 아시아 금융위기
1997년 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일어났다. 위기 전 1986년부터 약 10년까지 경제의 황금기를 누렸던 태국이었다.
1985년 9월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미국 재무장관이하,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이 모였다. 미국은 이날 환율에 대해 미국의 달러가치를 내릴 테니, 독일 마르크와 일본엔화의 가치를 높이라 요구했다. 당시 달러가치가 높아서 독일과 일본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미국을 상대로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자 합의에 의해 독일과 일본은 통화가치를 2배로 올렸다.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도 비슷한 상황이 되었고 달러의 가치는 떨어졌다. 통화가치의 변화로 수출품가격이 높아지자  사업을 하는 글로벌 회사들은 태국이나 개도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태국에서 제조업 혁명이 일어났다. 수출이 늘고 경제는 성장했다. 한편, 93년도에 3% 연준의 기준금리가 94년부터 올라서 95년도에 5%가 되었다. 달러에 페그 된 태국의 기업들이 수출경쟁력이 사라져 가고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다. 달러와 페그제를 사용하는 태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태국의 달러는 없어져서 외환보유고가 비었다. 97년 5월부터 환투기꾼의 공격이 시작되어 달러도 구하기 힘든 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아시아금융위기의 시작이다. 태국의 환투기공격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한국도 영향을 미쳤다.
 
예 3) 2008년 글로벌 위기  
1990년대 말 인터넷 초고속붐이 일고 닷컴버블이라는 것이 생겨날 정도로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솟았다. 과열이라고 판단한 연준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2000년 하반기부터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연준은 금리를 계속적으로 낮췄다. 넘쳐나는 달러는 주택시장으로 들어갔다. 점점 주택 담보비율이 높아져갔다. 2008년에는 290%로 폭발적으로 급등하였다.
연준은 과열을 식히기 위한 목적으로 2004년부터 금리인상을 통해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해 왔었다. 기준금리는 5.25% 까지 높아졌다. 고금리는 주택가격을 하락시켰다. 2008년 9월엔 주택가격이 20%나 추락하였다. 차입자들의 부도가 늘고 금융기관들은 집들을 차압해서 경매에 내놓기 시작했다.
2008년 8월 사실상, 전체 모기지의 90%가 부도상태였다.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 준 금융기관들은 문제가 생겨났다. 이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초래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파생상품들로 연결되어 있는  글로벌 경제시장으로 흘러나가 전 세계가 금융위기에 빠져들었다.
연준의장 벤 버냉키는  파격적인 돈 풀기를 시작하여 미국국채, 주택담보증권(MBS), 민간기업의 회사채까지 사들였다. 2013년까지 연준의 양적완화는 지속되었다.
미국이 경제 금융 안정을 찾는 듯하자 양적완화정책의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미국의 달러유동성이 만들어 낸  신흥국의 상황-달러가 풍족하여 넘치는 신흥국 자본시장에게 버냉키의 돈을 푸는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말은 신흥국의 달러가 외부로 유츌되게 만들었다. 소위 테이퍼 텐드럼( Taper Tantrum)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나 외부자본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인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티르키에 같은 나라들은 달러에 대한 환율이 높아졌다. 2013년 5월이래 외환위기에 대한 경고가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채권매입을 통해 돈울 풀어내는 속도를 쥴이겠다는 연준의장의 발언에 세계금융시장이 발작에 가깝게 반응한 것이었다.

예 4) 코로나19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 19가 시작되기 전까지 세계경제상황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20년부터 경제금융적인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완전고용에 가깝던 실업률 4%는 15%로 폭주했고 주가는 S&P500 기준으로 2월 20일 3,400 정도에서 3월 20일 2,300으로 대폭락을 했다. 연준은 서서히 거둬들였던 달러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기준금리를 0-0.25%까지 낮췄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미국처럼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코로나 19를 극복해 내기 위한 정책이었다.
화폐의 유통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미국의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2021년 초 미국물가상승률은 2% 를 넘어섰다. 2022년 초에는 7%가 되었다.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풀었던 돈을 다시 모아서 거둬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후 연준은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 달러로 인한 다른 나라 돈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 결론 )

미국의 달러와 금리정책은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 금융과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것도 깊은 연관성으로 함께 움직인다. 기축통화의 힘이 특정국가의 흥망성쇠에 원치 않아도 관련이 된다.
최근에 일어났던 달러와  전 세계국가와 연관한 달러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달러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달러의 파워는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현재는 여전히 지속 중임을 부인할 수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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